AI가 코드를 몇 초 만에 뽑아내는 시대에, 오히려 필름 카메라와 LP 같은 느린 취미로 돌아가는 사람이 늘고 있다.
효율의 반대편에 있는 취미가 왜 하필 개발자에게 인기일까.
번아웃과 집중력이라는 키워드로 그 배경을 가볍게 풀어보려 한다.
느린 취미가 번아웃을 고쳐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결과가 즉시 나오지 않는 활동이 지친 머리를 쉬게 한다는 이야기는 꽤 많다.

개발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예전 같으면 한나절 걸리던 작업이 이제는 프롬프트 몇 줄로 초안이 나온다.
그런데 빨라진 만큼 마음이 편해졌냐고 물으면, 꼭 그렇지도 않다.
결과가 바로바로 나오는 일만 반복하다 보면 오히려 쉬는 법을 잊기 쉽다.
느린 취미는 딱 그 반대편에 있다.
필름 한 롤은 현상하기 전까지 결과를 모르고, LP는 다음 곡으로 건너뛰기가 번거롭다.
이 불편함이 이상하게 마음을 가라앉힌다는 사람이 많다.
개발자 번아웃은 조사마다 수치가 크게 다르다.
그래서 하나의 숫자로 못 박기보다 흐름으로 보는 게 정확하다.
엔지니어링 리더를 대상으로 한 LeadDev의 2025년 3월 조사에서는 약 22%가 심각한 번아웃 상태라고 답했다.
다른 개발자 조사에서는 절반을 훌쩍 넘는 응답이 번아웃을 겪었다고 나오기도 한다.
수치는 제각각이지만, 많은 개발자가 피로를 안고 일한다는 점은 똑같다.
AI 도구가 늘어난 뒤 오히려 산출 기대치만 높아져 압박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날로그의 부활은 감성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숫자로도 드러난다.
미국 음반산업협회(RIAA)의 2024년 연말 리포트에 따르면 바이닐 매출은 약 14억 달러로 18년 연속 성장했다.
수량으로도 바이닐이 3년 연속 CD를 앞섰다.
필름 카메라도 마찬가지다.
여러 매체가 2024년을 두고 필름이 수십 년 만에 가장 좋은 해를 보냈다고 전했다.
특히 젊은 세대가 디지털에 지친 반작용으로 필름을 찾는다는 해석이 공통으로 나온다.
| 구분 | 디지털 방식 | 느린 취미 |
|---|---|---|
| 결과 확인 | 즉시 | 기다려야 함 |
| 한 번의 무게 | 무한 재촬영·수정 | 한 컷·한 곡에 집중 |
| 쉬는 느낌 | 계속 다음으로 | 한 가지에 머무름 |
느린 취미의 진짜 매력은 한 가지에 오래 머문다는 점이다.
Ward 연구팀이 2017년 발표한 실험에서는 스마트폰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필름 카메라를 들고 나가는 순간, 손에는 알림이 울리지 않는 도구 하나만 남는다.
LP 한 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40분도 비슷하다.
개인적으로는 느린 취미가 대단한 치료제라서가 아니라, 잠깐 한 가지만 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에 쉬게 된다고 본다.

번아웃을 없애준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다만 결과가 즉시 나오지 않는 활동이 머리를 쉬게 한다는 경험담이 많고, 잠시 화면에서 멀어진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렇지 않다.
산책, 종이책, 요리처럼 결과가 천천히 나오고 손이 움직이는 활동이면 충분하다.
느린 취미가 생산성을 올려준다고 포장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생산성과 상관없어서 좋은 시간이다.
하루 종일 빠른 결과에 시달렸다면, 결과가 천천히 나오는 시간 하나쯤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그 시간이 다음 날 다시 코드를 마주할 힘을 조금 채워준다고 생각한다.
느린 취미는 뒤처지는 게 아니라, 잠깐 속도를 고르는 일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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